“일만 잘하면 된다”는 착각에서 시작된 오해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1인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흔하게 하는 착각은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믿음이다. 나 역시 그랬다. 몇 년간의 실무 경력과 잘 정리된 포트폴리오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일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일이 잘 풀릴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로 초기에는 지인이나 동료 디자이너의 소개를 통해 몇 건의 프로젝트가 이어졌고, 출발은 순조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날수록 알게 되었다. 단순한 디자인 실력만으로는 프리랜서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작업을 수주하는 과정부터 견적 제시, 계약, 일정 조율, 클라이언트 응대, 피드백 대응, 결과물 정리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디자이너라는 직무의 범위가 실질적으로는 ‘기획자 + 관리자 + 고객 서비스 담당자’까지 확장되는 셈이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나 충돌은 대부분 프로세스 부족에서 발생했다. 작업 방향이 명확하지 않거나, 역할과 범위가 불분명한 채 시작한 프로젝트는 언제나 문제를 남겼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결국 받아들였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은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계약 없는 작업, 그 대가는 언제나 나에게
사업 초반에는 계약서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지인이거나, 상대가 소규모 업체일 경우 “이 정도는 그냥 믿고 하자”는 분위기가 많았고, 나 역시 부담을 느껴 구두로 합의한 채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프로젝트일수록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작업 범위가 점점 확장되거나, 수정 요청이 무제한으로 이어졌고, 심지어는 완료 후 비용 지급이 지연되거나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느꼈다.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심지어 내가 그 상황을 만들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이후부터는 어떤 프로젝트든 최소한의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형식이 아니더라도, 작업 내용, 일정, 금액, 수정 조건, 저작권 귀속 여부 등 기본적인 항목을 포함한 작업 제안서 형태라도 문서로 남기는 습관을 들였다. 전자계약 서비스인 모두싸인이나 도큐사인 등을 활용해 온라인상에서 서명하는 방식으로 바꾸자, 클라이언트도 부담을 덜 느꼈고 나도 체계적인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계약서는 신뢰의 반대가 아니라, 신뢰를 위한 도구다. 상대방을 믿지 않아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준을 맞추고 혼선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특히 큰 규모의 프로젝트나 기업과의 협업일수록 계약이 없으면 모든 리스크가 내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한 이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계약서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일정과 단가 관리의 실패, 체력 고갈로 이어지다
초창기에는 “일을 거절하면 다시는 일이 안 들어올지도 몰라”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제안이 오면 무조건 수락했고, 단가가 낮거나 일정이 촉박해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정이 겹치고, 하루에 두세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야근과 주말 근무는 일상이 되었고, 물리적으로는 작업을 해냈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급하게 마무리한 작업은 수정 요청이 반복되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일정이 밀리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랐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몸은 지쳤고, 머릿속도 혼란스러워졌다. 단가는 낮고 작업 시간은 길어지면서, 결국 시간 대비 수익률도 떨어졌다. 수익은 생기지만, 삶은 텅 비어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한 끝에, 의뢰를 받을 때부터 단가와 일정에 대한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단가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가치이므로, 최소 시간당 수익을 기준으로 제안 수락 여부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일정도 무조건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사이에 최소 하루 이상의 여유를 두고 조율했다. 일정이 정해지면 그 외에는 다른 프로젝트를 겹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일과 생활 사이에 숨 쉴 틈을 만들었다.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모든 시행착오는 결국 나만의 시스템이 되었다
프리랜서 초창기엔 매번 새롭게 대응했다. 견적서는 프로젝트마다 다른 형식으로 만들고, 이메일도 그때그때 내용을 고민하며 작성했다. 회신이 늦어지거나,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뒤엉키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쌓이자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반복되는 일을 효율화하지 않으면 결국 체력도, 시간도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업무 관련 템플릿을 만드는 일이었다. 견적서, 계약서, 작업 안내 메일, 작업 완료 보고서 등 반복적으로 쓰이는 문서를 정리해두고, 프로젝트마다 필요한 부분만 수정해 사용했다. 일정 관리는 종이 메모 대신 캘린더 앱을 활용해 일간·주간 단위로 계획을 세웠고,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는 회계표도 만들었다. 클라이언트 목록 역시 이름, 연락처, 프로젝트 이력, 특이사항까지 함께 기록하면서 관리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처럼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둘씩 나만의 ‘작업 매뉴얼’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수를 줄이고, 시간을 절약하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아무도 완벽하게 시작하진 않는다. 중요한 건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프리랜서로 시작해 사업가로 나아가는 과정은 결국 그 반복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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